[익명O’R님 曰] 시리(Siri)에게 질문을 던져 보자.
“코코넛을 운반하는 제비의 종단 속도는?”
시리가 대답한다.
“유럽 제비라면 시속 약 25마일입니다. 가상비서라면 이 정도는 기본이죠.”
시리에게 똑같은 질문을 다시 해 본다.
“코코넛을 운반하는 제비의 종단 속도는?”
시리가 대답한다.
“가장 최근에 누가 저한테 같은 질문을 하다가 계곡 아래로 떨어져 죽었어요.”
(The last person that asked me that ended up in a crevasse.)
이 답을 이해하려면 1970년대 제작된 영화와 간단한 역학 상식이 필요하다.
“Terminal Velocity”는 우리 말로 종단 속도. 종단 속도가 뭔지 학교에서 배운 기억을 되살려 보자.
낙하하는 물체는 지표면에 가까워 질수록 중력이 점점 커져 낙하 속도가 빨라지는데
낙하 속도가 빨라질수록 밑에서 쿠션처럼 받치는 공기 저항도 커진다.
하지만 일정 속도에 도달하면 낙하 물체에 작용하는 중력과 공기 저항력이 같아져
더 이상 낙하 속도에 가속이 붙지 않고 일정 속도로 내려오게 된다.
이 때 속도를 “Terminal Velocity”, 즉 종단 속도라고 한다.
종단 속도는 알겠는데 코코넛을 나르는 제비는 무엇이며,
이 질문을 한 사람이 계곡 아래로 떨어졌다니 무슨 말일까?
답은 1974년 제작된 영국 코디미 영화 “몬티 파이선과 성배”(Monty Pythons and the Holy Grail)에 있다.
영국 아더왕의 패러디물로 1983년 칸느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한 바 있다.
40년 넘었지만 수준높은 패러디와 미친 코미디로 오늘날도 (시리를 비롯해) 팬들이 많고 자주 인용된다.
영화에 등장하는 대사 원문은 이렇다.
“What is the air-speed velocity of an unladen swallow?”
(짐이 없는 제비의 비행 속도는?)
성에 도착한 아더왕은 성문을 지키는 병사들에게 성주에게 자신이 왔다고 알리라고 말한다.
병사들은 아더왕 일행을 신기하다는 듯이 쳐다본다. 그도 그럴 것이 코코넛 껍질을 매달은 조랑말을 끌고 왔기 때문이다.
조랑말이 움직일 때마다 코코넛 껍질이 서로 부딪히는 소리가 마치 말발굽 소리처럼 들렸다. (여기에는 일화가 있다. 원래는 진짜 말을 타는 장면을 촬영하려 했는데 예산이 부족해서 코코넛 껍질을 매달은 조랑말로 대처했다고 한다)
병사들이 코코넛이 어디서 났느냐고 묻자 아더왕은 머시아 왕국에서 주웠다고 대답한다.
머시아는 추운 지역인데 열대식물인 코코넛이 어떻게 있냐고 하자 아더왕은 제비가 물고 왔다고 말한다.
병사들의 토론이 시작된다.
“제비가 아프리카에서 영국까지 코코넛을 운반할 수 있나?”,
“몸무게가 5온스(약 141g)인 제비가 1파운드 코코넛을 옮길 수 있을까?”,
“만일 옮길 수 있다면 그 제비는 일반 제비인가 아프리카 제비인가?”
현재 지구상에 서식하는 제비는 그 종류만 해도 74종.
그 중에는 유럽 제비와 아프리카 제비라고 불리는 종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한다.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제비는 47종인데 서식지에 따라 아프리카 제비, 남아프리카 제비 두 종으로 나뉜다.
병사1: 몸무게 5온스 새가 1파운드(453g) 나가는 코코넛을 어떻게 물고 날아요.
아더: 그게 무슨 상관이야. 빨리 너네 성주한테 가서 카멜롯의 아더왕이 왔다고 전하라.
병사1: 이봐요, 제비가 하늘에서 속도를 유지하려면 초당 43번의 날개짓을 해야 돼요. 알아요?
아더: 관심 없다.
병사2: 아프리카 제비라면 가능할지도 몰라!
병사1: 아 그렇군! 유럽 제비가 아니라 아프리카 제비!
병사들의 토론은 계속 이어진다.
병사1: 그런데 아프리카 제비는 철새가 아니잖아. 그 녀석들도 코코넛은 못 옮겨.
병사2: 잠깐! 제비 두마리가 힘을 합친다면 어떨까?
병사1: 제비는 일렬로 날잖아.
병사2: 간단해, 넝쿨을 끈으로 엮어서 사용했겠지.
병사1: 등쪽의 유도 깃털 아랫 부분에 끈을 단다고?
병사2: 안 될 거 없잖아?
아더왕 일행은 마지막 여정인 죽음의 다리를 건너게 된다. 다리에는 다리를 지키는 수호자가 있다.
수호자는 다리를 건너는 사람에게 3가지 질문을 던지는데 다 맞춰야 건널 수 있다. 1개라도 못 맞추면 지옥의 계곡으로 던져지게 된다.
수호자가 아더왕에게 질문한다.
수호자: 짐이 없는 제비의 비행 속도는 얼마인가?
아더: 유럽 제비 말인가? 아니면 아프리카 제비 말인가?
수호자: 음.. 모르겠는데.
베데미어: 제비에 관해서 알고 있는 게 어쩜 그렇게 많으세요?
아더: 왕이라면 이런 것도 잘 알아야 하느니라.
이 질문은 영화 스타 트랙에 등장하는 명대사이기도 하다.
술집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던 조르디. 누군가가 그에게 이 술집 바텐더 Gorn은 모르는 게 없다고 귀뜸해 준다. 조르디는 바텐더를 테스트해 보기로 하고 질문을 던진다.
“짐이 없는 제비의 비행 속도는 몇이지?”
(What is the airspeed velocity of an unladen swallow?)
바텐더가 되묻는다.
“어떤 제비 말씀이신가요? 아프리카 제비요? 아니면 유럽 제비요?”
(What do you mean? An African or a European swallow?)
“Boy, he’s good!”
조디는 바텐더가 과연 대단하다는 것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그동안 수많은 Geek들은 짐을 싣지 않은 제비의 비행 속도를 알아내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 중 뉴욕타임즈 과학 그래픽 에디터 조나단 코럼의 블로그 Style.org 분석이 가장 ‘공신력’있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조나단 코럼은 기록을 뒤져 유럽 제비의 평균 날개 길이가 12.2cm, 몸무게(질량)는 20.3g 정도 된다는 걸 알아냈다. 그는 오늘날 덩치가 비슷한 새를 선택해 날개짓 횟수, 진폭, 고도, 비행 패턴 등을 비교해 본 결과 짐이 없는 유럽 제비의 비행 속도는 대략 초속 11미터, 혹은 시속 24마일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시속 25마일이라는 시리의 답과 크게 차이가 나지 않는 걸 보면 시리는 아마도 좀 더 정밀하게 계산한 모양이다. 계산 하는 데 과학자, 조류학자, 고성능 컴퓨터, 울프럼알파가 동원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사소한 것도 놓치지 않는 치밀함과 세심함(무서운 놈들..).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진정 좋아하고 즐기기 때문에 가능하겠지 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의미에서 애플에는 행복한 직원들이 많은 것 같다. 최소한 시리 부서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