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Unixian

unixian[작성일: 2004.1.23] KAIST/ISC 대회 두 번 입상 경력의 소유자로 2회 올림페어 국제 해킹대회에서는 상금을 불우이웃을 위해 써 달라고 기증해 좌중을 놀라게 한 유니션. 해커스랩 초기 운영진으로 loveyou, cybertac과 함께 이틀만에 프리해킹존을 만들어낸 신화를 탄생시킨 주인공이자 자타공인 골초1급에 아마추어무선, 플라이트시뮬레이션, 알파인 스노우보더로 현재 온라인 아케이드 게임 전문회사인 f2 system에서 linux 기반의 게임 시스템을 개발하고 있는 그는 음지의 크래커로부터 밝은 양지의 암울한 샐러리맨으로 살아오며 자신이 경험해 온 다양한 삶을 담담하고도 재미난 어조로 풀어나간다…


별로 자랑할 몸매는 못되지만 지금 몸무게가 104kg 정도 되는군요. 하체는 좋은데(나중 취미 말할때 이유는 알게됩니다)… 상체는 미쉐* 타이어 마크같은 모양새를 하고 있지요. 이런 제가 어렸을때 태어날때 2kg 도 안되는 저체중으로 태어나서 부모님, 할머니 고생 엄청 시켰다고 합니다. 울지도 않아서 죽을 줄 알고 호적에 올리지도 않았는데, 병원에서 의사 선생님이 저를 얼음물에 한번 퐁당 담갔다가 빼니까 그 때부터 우렁차게 울고 다른 아이와 다를바 없는 정상아(?)가 되었다고 합니다. 하여간 그 후유증인지 어렸을땐 몸이 약골이어서 부모님은 저를 열심히 먹였다고 합니다. 또래 아이들이 축구하고 놀 때 저는 집에서 놀았고.. 덕분에 집에 있던 웬만한 책은 모두 섭렵했지요. 당시 어머니가 출판사에 다니셔서 집에 꽤 책이 많았답니다. 그 때 책에서 얻은 지식으로 중학교 때까진 책 안보고 시험 쳐도 대략 상위권을 유지했습니다. ***믿어 주세요!!***

그러던 어느날 동네에서 제일 잘 산다는 친구집에 놀러 갔어요. 왜 그런거 있잖아요 공부는 별로 못하는데 집이 부자인 녀석들은 반에서 공부 좀 잘 하거나 싸움 잘 하는 친구들 집에 데려가 놀기 좋아 합니다. 제가 뭐 그렇게까지 공부를 잘한건 아니지만 어찌어찌 해서 놀러 갔는데… 그 친구 집에서 처음으로 아타리 컴퓨터(컴퓨터라기 보다는 게임기에 가까운)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 때가 초등학교 1학년이었습니다. TV에 연결해 테이프 넣고 병아리가 날아다니는 게임을 하는게 그렇게 신기할 수가 없었답니다. 게임이름은 생각이 잘 안 나는군요.

정말로 컴퓨터라고 부를수 있는 기계를 만진 것은 조금 더 나이가 든 후였습니다. 사촌 누나 집에 MSX가 들어 왔다는 소식을 듣고 무작정 가서 열심히 *게임*을 했습니다. 그리고 애플II도 보게 되구요. 지금 제 나이(27) 또래의 컴퓨터광이라면 대부분 비슷한 기계들을 보며 자라왔을 것이고… 그러고 보면 저는 그렇게 튀는 뛰어난 컴퓨터광은 아닌 것 같습니다.

집안 사정이 넉넉치 못해 친구집과 친척집을 전전하며 조금씩 컴퓨터 스킬을 키우다 동네 컴퓨터 학원에 등록해서 키보드 연습은 안하고 열심히 게임과 애플용 베이직으로 뭔가를 만들었습니다. 그 덕택에 아직도 독수리 타법을 구사하고 있지요. 그때 키보드 연습 제대로 했으면 지금보다는 훨씬 빠르게 칠 수 있을텐데…그래도 변종 독수리 타법으로 700타 정도의 평타를 유지하고 있기에 지금 회사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저의 오묘한 타이핑을 보며 놀래고 있습니다.

unixian1처음으로 제 소유의 컴퓨터를 산것은 어머니의 사랑 덕분입니다. (제가 아직도 철은 덜 들었지만 어머니의 끝없는 사랑만은 느끼고 있지요… ) 중학교 2학년 때. 그날 웬지 방청소를 하고 싶은 마음이 갑자기 들었습니다. 그래서 집안을 싹 치워놨습니다. 어머니께서 보시고 놀라시며 ‘뭘 사고 싶니?’ 라고 물어보시길래 저는 반 장난으로 “컴퓨터요!” 라고 이야기 했는데… 이것이 제 인생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사건이 되고 말았군요. 어머니는 컴퓨터가 싼 물건도 아니니 이왕 살거면 좋은 걸로 사야 된다고 동네 컴퓨터 판매점에 가셔서 당시 최고 사양 컴퓨터 386DX를 한 대 뽑았습니다. 그 때 번들로 컴퓨터 판매점 직원이 사운드 카드와 모뎀 중 어느 것을 선택할 건지 물어 봤습니다. 사운드 카드를 달라고 했으면 아마도 지금의 저는 없을 겁니다. 얼마나 많은 전화세가 나올지 상상조차 못한 채 모뎀을 달라고 했죠..

2400bps 모뎀을 받고, 전화선을 연결하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야기 프로그램을 깔고 컴퓨터 직원에게 빌린 하이텔 ID(그때는 케텔이었던가요)로 처음 PC통신에 입문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아는게 없어서 거의 사용하지 않다가 한번 채팅방에 매력에 빠진 이후로, 그리고 제 나이 또래라면 누구나 경험했을 법한 야동, 야사 받느라 사설 비비에스도 운영해보고 하면서 엄청난 전화세의 압박에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남들과 다르게 살기를 항상 추구해왔던 어린 저는 그때 한참 게이트웨이 서비스로 사용되던 hinet-p를 알게되고 NID를 입력하면 전화선으로 hinet-p망에 연결된 다음 다른 서비스로 연결되는 것을 알았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때 하이텔 접속이 너무 안될때라, 일종의 사람들이 전수해준 팁이었죠. 전화선으로 연결한 다음 다른 서비스로 연결된다는 그 복잡함에서 오는 기쁨에 이것 저것 연구해 보다가 S대학교 학내망이 hinet-p로 연결된 것을 알았습니다.

당시는 인터넷의 존재가 점차로 국내에 알려지던 시기였기 때문에 학내망을 통하면 인터넷(telnet, gopher, archie)서비스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걸 알았지요. 문제는 사용자 계정이었습니다. 제 기억에 초반에는 public 서비스로 운영되다 나중에는 등록된 사용자만 인터넷을 쓸수 있게 바뀐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때 처음으로 UNIX의 존재를 알게되었고 telnet의 사용법이라던가 ftp, gopher, archie등의 사용을 섭렵했지요.

이때가 중학교 3학년, 한참 공부해야 할 때였습니다. 혼자서 배우기엔 아무래도 문제가 있어서 서점에서 SCO UNIX 메뉴얼을 사서 공부를 하고-처음 볼땐 무슨말인지 몰랐는데 자기전에 보고 화장실 갈 때도 보니까 점점 이해가 되더군요-

지역 인터넷 동호회에 들었는데 마침 소모임 중에 은밀한 크래킹을 다루는(요즘과는 많이 틀리죠 그때는 정말 기술의 대마왕들이 많았습니다) 곳이 있어서 냉큼 가입을 하고, 어두운 지식을 사사받습니다. 그 덕분에 몇몇 dial-up 계정과 전화선으로 편하게 인터넷 연결을 할 수 있는 테크닉, 정보검색 하는 법 등등을 배웠고 너무 의기양양 해졌습니다.

채팅방에서도 그런 류의 방을 만들어서 별로 높지도 않은 지식을 최고인양 설법하는 등의 추한 모습을 보이다가…

K대학의 무림 고수를 만나 무릎을 꿇게 되었습니다. 누구라고 밝힐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 보안과 크래킹의 역사에 한획을 그은 사람이었죠. 저는 그 때 모든 자존심을 뒤로 하고 무조건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연구기관의 수퍼 컴퓨터 접근 방법이나 일반 사람에겐 잘 안알려진 unix의 보안 문제, 프로그래밍 노하우 등등 관계된 것이라면 뭐든지 알려고 노력했지요.

그때는 담배도 못피는 어린나이였고, 술도 안마셔서 그런지 뇌세포가 살아있어서 그런지는 몰라도 (아니면 좋아했던 일이기에 가능했겠죠) 마치 스폰지가 물을 빨아 들이듯이 머리에 쏙쏙 들어 왔습니다.

아, 그런데 또 실력과시라는 병이 도졌지 뭡니까… 그런 정보를 알고 공부를 하게 되니 그동안 안보였던 세상이 보였다고 할까요? ..매트릭스에서 네오가 새로 눈 뜬 것엔 비견할 수 없겠지만, 그때는 우리나라 인터넷 서비스가 거의 태동단계 였기에 보안적인 허술함이 어린 저의 눈에 띄었습니다. 길을 걷다가 어느 집의 문이 안잠겼다고 해서 열고 들어가면 무단침입이 되겠지요. 똑같은 논리지만, 네트웍 상에서 벌어지는 일이었기에 당시는 죄책감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지 말아야 할 길을 가게 되었습니다…

모 신문사의 보안 구멍을 발견하고 어찌어찌 접근 권한을 획득한 다음, 기사 송고 과정을 보기도 했고 덕택에 DBMS(기억에 informix를 썼던거 같군요) 공부도 하긴 했군요. 수정은 간떨려서 못했습니다 😉

당시는 국내 대부분 대학이 버그를 모으면 백과사전을 쓸수 있다는 S 운영체제나 A 운영체제를 사용했기 때문에 마음만 먹으면 어느 대학 서버든 들어가 계정을 만들고 비비에스의 관리자 권환을 획득할 수 있었습니다. 비밀글들을 보고 참 나쁜짓도 많이 했지요…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국내에서 그때는 가장 유명했던 인터넷 bbs인 K모 BBS를 크래킹 해서 엄청 욕먹은 것이었는데… 지금에 와서야 사과드립니다.

외국의 모 대학들과 도서관도 몰래 드나들고 하다보니 겁이 없어졌나 봅니다. 급기야는 국가의 방위산업체 기업에 들어갔고… 그게 가장 큰 사건이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의 컴퓨터 보안 관련 범죄는 인터폴의 모수사대에서 처리했는데 저는 이미 그 레이더에 포착되어 있었고, 방위산업체에 불법 접속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 돼서 결국 고등학교 2학년때 덜미를 잡혔습니다.

그날은 날짜는 기억 안 나지만 부산의 산골짜기에 있는 모교에서 방학중 보충수업을 받던 중이었습니다. 기숙사 사감선생님이 어머님이 왔다고 부르시더군요. 저는 1층 구내 매점으로 내려 갔습니다. 가니 어머니와 처음보는 남자 두명이 서있더군요. 그 사람들이 인터폴의 수사관이었습니다.

제 나이가 어려 보여서 그랬는지 손에 수갑을 채우거나 몸을 묶는 행위는 없었습니다. 걱정하는 어머니와 함께 수사관들의 차를 타고 부산에서 서울까지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올라왔습니다.

지금이야 서울에 사니까 눈감고도 찾아갈 수 있는 곳이지만 그 날 뱅뱅사거리 앞에서 호송차량이 고장나는 바람에 엄청나게 고생했던 기억이 나는군요…

서울에 도착한 뒤 모처로 옮겨진 후 며칠동안 조사를 받았습니다. 다행히 정규수업기간이 아니라 방학 보충수업 기간이었기에 학교에서는 단순히 보충수업 땡땡이 친 정도로 처리돼서 별 탈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일단 미성년자고 당시만 해도 네트웍상의 크래킹이 아직은 화이트 컬러 범죄로 여겨지는 분위기였고, 학생이라는 특이성 때문에 일단 조사만 마치고 부산으로 다시 내려왔습니다. 조만간 서울로 다시 오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와 함께 말입니다.

계절이 바뀌고 저는 고3이 되어 그 때 일을 잊어가던 어느날 이번엔 정규수업 기간 중에 검찰에 소환이 되었습니다. 제가 지은 죄는 컸지만 나이가 어리고 고3이라는 이유로 담임선생님이 수업을 하시다 말고 부산에서 서울로 상경하는 해프닝을 겪고, 제 보호감찰(?)을 하시는 상황이 되어서 저는 담임선생님께 매달 반성문을 제출해야 했습니다. 졸업하고도 두달 더 제출한 기억이 나네요.

문과 출신이지만 이과로 수능을 치고 컴퓨터 전공으로 대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이놈의 장난기는 또 발동되어서 1학년 UNIX 실습 시간에 수업은 안 듣고 마음에 드는 여학우 X-terminal에 그림 띄우기, 실습실 메인 서버인 enterprise에 로긴 메세지를 “날씨도 좋은데 술이나 먹으러 갑시다~” 라고 바꿔놓기 등등 악동짓을 많이 해서 실습실 조교에게도 엄청 찍혔습니다. 그래도 시험은 잘 쳐서 유일무이한 A+이 나왔답니다. 나머지 과목은 전부 총으로 난사한 듯한 F F F…

그다지 건설적이지 못한 대학생활을 보내다가 왠지 갑자기 돈이 벌고 싶다는 충동으로 휴학계를 내고 이것저것 하던 차에 해커스랩이 새로 생긴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제 적성에도 맞고, 아는 분(?)도 있고 해서… 초기 개발 및 관리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loveyou, cybertac 형들과 함께 프리해킹존을 만들었습니다.

얼마 뒤 mud님이 합류하셔서 아주 화기애매한 분위기로 회사생활을 했습니다만… 자유분방한 제 성격에다가 해커스랩이라는 팀 분위기 자체가 튀는 분위기라서 그런지 일반 회사 생활하고는 사뭇 달랐죠.

유명한 사건이지만, 프리해킹존을 완성하겠다고 약속한 마감주까지 자고 놀고 하다가, 마감 정확히 이틀 전에 시작, 이틀만에 완성해서 그런지 초기에는 문제가 많았습니다… 지금은 후기 운영진들이 손을 많이 본 덕분에 많이 좋아졌더군요.

해커스랩에 근무하면서 많은 실력자들및 초보분들도 만나고… 즐거운 인생의 한 때를 보낸 것 같습니다. 그 때 잠이 엄청 늘었는데 덕분에 지금까지도 그걸로 많이 고생하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복학 문제도 있고 해서 정든 해커스랩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후 다른 회사를 다니면서 경력도 쌓고 임베디드 리눅스, 방화벽, 보안컨설팅, Linux 시스템 개발등등 많은 일을 하면서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지금은 경마를 주력으로 하는 성인용게임회사(야한거 말구요. 성인등급이라고 다 살색이 나오는건 아니죠)에서 기본 게임 시스템 환경 설계 및 지원을 하고 있습니다. 어제 일 같은데 거의 10여년이란 긴 세월을 UNIX와 크래킹, 보안과 함께 보냈군요.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KAIST에서 주최하는 해킹대회에서 입상해서 상금 1만달러를 불우이웃 돕기에 기증한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도 잘한 일인 것 같습니다. ohhara와 같은 팀으로 출전해서 원래 1만달러를 반으로 나눠 가지려 했지만 기증했습니다. 아마도 돈의 가치를 몰라서였겠지요. 지금이라면 아마도 .. 제가 다 써버렸는지도 모릅니다. 😉

 

news_ohhara-20001115

 

요즘은 좀 보안이나 크래킹쪽일이 시들해져서 별로 시간을 할애하고 있지는 않지만, 한창때를 회상해 봅니다.

당연한 거겠지만, 저의 최고 무기는 집중력인 것 같습니다. 평소에는 시간 때우고 소일하기에 급급해서 집중과는 거리가 멀지만 한번 목표가 잡히고 뭔가를 해야겠다면 며칠밤이 걸리던지(한때는 추석연휴를 포기하고 한 시스템에 침입하는데 시간을 썼던 기억이 나는군요) 반드시 결과를 봐야만 직성이 풀렸죠. windows 계열은 원래부터 잘 안다뤘지만 UNIX에 관련된 분야라면 언제나 재미있게 보고 공부했던거 같습니다.

요즘은 참 환경이 좋은거 같습니다. 뭐든 배우려고 하면 인터넷이라는 최고의 참고서가 있으니까요. google로 못찾을수 있는게 뭐가 있을까 생각 해봅니다. 예전 같이 자료도 별로 없고 몇몇만이 알던 정보를 아는것에서 비롯되는 우쭐감은 요즘에는 별로 찾을 수가 없는거 같아요. 이제 이쪽 분야에 생업으로 종사하는 분들도 많아지고, 정보는 사방에서 쏟아져 나오니까요.

그래도 예전에 한가닥(?) 했다는 생각에 가끔은 추억에 잠기기도 하지만… 요즘은 그냥 현업에 종사하는 샐러리맨이 된거 같아 가끔은 씁쓸하기도 합니다. 요즘 보안이나 크래킹, 해킹에 관심이 많은 어린 친구들은 무작정 노력도 안하고 가르쳐 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차근차근 컴퓨터의 정도를 배워나가다 보면 원하는 결과를 얻을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운영체제의 숨겨진 사용법, 중급이상의 프로그래밍 실력, 그리고 집중력이 없으면 잘되봐야 스크립트 키디 밖에 안될거라고 강력히 믿고있습니다. 제가 개인적으로 제일 좋아하는 문구는

‘실패보다 성공이 먼저 나오는 것은 사전 뿐이다’

라는 멋진 말입니다. 비달 사순이 했던 말인데 원문이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군요.

모든 속담이나 경구는 자기 상황에 맞게 쓰면 참 좋은 약이 되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들도 무수한 시행착오를 통해 뭔가 감을 잡고, 깨달은 것이 많을 겁니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그 시행착오를 막아줄수 있는 수많은 자료들이 책과 지천으로 인터넷에 널려 있습니다. 우리가 할일은 그것들을 찾아 가공하고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것 뿐입니다. 하긴 공부도 이렇게 하면 뭐든 못하겠습니까 마는…

너무 이쪽 이야기만 해서 재미가 없어지는거 같은데…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조금 해볼까 합니다. 언제부턴가 취미가 컴퓨터에서 다른 것으로 바뀌었습니다. 이제는 봄 여름 가을동안 자린고비같이 돈을 모아 겨울에 후회없이 쓰는 “겨울사나이”가 되어버렸네요.

99년에 처음 탄 스노우보드가 매년 실력이 늘더니, 이제는 알파인 스노우보드를 타게 되었습니다. 이번 설연휴에도 집에 안내려가고(사실 부모님들이 밀월 여행을 떠나셔서 집에 내려가도 사람이 없었지만요) 열심히 리조트에서 실력연마를 했지요. 절대 보드장에서는 작업 안합니다. 오로지 보드 밖에 없습니다. 덕택에 죽어도 못 딸 것 같던 운전면허도 따고, 차도 사고, 인생에 많은 변화가 있었지요.

그런데 이상하게 상체의 살은 안빠지고 계속 배둘레햄은 유지되됩니다. 하체는 튼튼해져서 이걸 좋아해야 될지 걱정입니다. 그나저나 설연휴전에 처음으로 사고가 나서 액땜 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사고한번 나니까 운전하는건 역시나 겁나는 일이라는게 실감 나더군요. 여러분들도 겨울에는 빙판길 눈길 운전 조심 하시길 바랍니다.

그러고 보니 한때는 열심히 공부해서 교수나 연구원이 되는게 제 소박한 꿈이었지만, 왠지 컴퓨터하고는 관계없는 삶을 살지 않을까… 요즘 부쩍 그런 생각이 듭니다. 늦게나마 스포츠에 관심을 가지게 되서 좋기는 한데 이거 돈드는게 장난이 아니군요. 하여간 즐길수 있을때 즐겨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직 27살인데요 뭐!

그렇다고 몸무게가 군면제 될 정도로 많이 나가는 것은 아닙니다. 신검 받을 때는 나름대로 정상적인 몸매를 유지하고 있어서 현역판정이었는데, 어떻게 보면 늦은 나이(25살)에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 병역특례로 편입돼서 일하고 있습니다. 2005년 초면 민간인이 되는군요.

2005년에 해외 원정 보딩 할 꿈을 품고
오늘도 열심히 일해서 돈을 차곡차곡 모아야 겠습니다.

여러분도 열심히 뭔가 꿈을 가지고 사시길 바랍니다. 그럼

새해에는 복많이 받으세요!

-alpine unixian 드림-

유니션 약력:
1978년 대한민국 부산출생
1997년 부산외국어고등학교 불어과 졸업
1997년 숭실대학교 컴퓨터학부 입학
2004년 현재 온라인 아케이드 게임 전문회사인 f2 system에서 linux 기반의 게임 시스템 개발중
(p.s: 알파인유니션은 주말 강원도 P모 스키장에 가시면 항상 만날 수 있습니다)

작성자: HackersLa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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